‘자본과 이데올로기’ — 사민주의 사회의 형성: 1950~1980년대

허진호 (Jin Ho Hur)
9 min readMay 21, 2021

피케티는 2차 대전 이후 유럽에서 조세재정 국가 체제가 확립되면서 가능해진 (특히, 독일 및 노르딕 중심의) ‘사민주의 사회’를 소유 불평등 해소를 위하여 가장 유효하였던 사회 제도라고 본다.

1,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본격화된 사민주의는, 노르딕 국가 뿐 아니라 20세기 중반 국가 경쟁력에서 미국을 앞섰던 독일에서도 그 기반을 확고하게 가짐으로써, ‘복지 국가, 사민주의 등의 이념은 국가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일반적인 고정 관념을 불식시킨다.

스웨덴 등 노르딕 국가뿐 아니라 독일에서도, 사회 분배, 주주와 노조의 경영권 분점 등 사민주의 기반의 제도는, 주로 미국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우리 사회 시스템에서의 경험과 비교하면 충격적이라고 할 정도로 다른 시스템이었지만, 20세기 전체에 걸쳐 독일, (석유 자원에 기반한 노르웨이를 제외하더라고) 노르딕 국가 전반, 그리고 어느 정도는 프랑스까지 국가 경쟁력이 유지되었다는 점에서 주목할만 하다고 본다.

이와 비교해서, 미국에서는 1930년대 대공황 이후 FDR의 민주당 정권이 현재의 미국 사회 시스템의 근간이 되는 대부분의 사회 제도를 — 실업보험과 노령연금을 포함한 사회보장제도, 의료보험, 노조 단체교섭권, 모기지론 (장기주택자금대출) 등 — 만듦으로써, 20세기 전반에 걸친 중산층 중심의 사회가 만들어지는데 필요한 사회 제도를 구축하여 케네디, 존슨으로 이어지는 30년 민주당 집권 시기를 시작한다.

유럽, 특히 노르딕 및 독일을 중심으로 한 북유럽의 사민주의 사회가 현실적으로는 가장 이상적이라고 보는 피케티는, 이에 미치지 못하는 미국 민주당 정권 하에서 뉴딜 정책 과정에서 만들어진 현재의 미국 제도를 (유럽 사민주의와 비교하여) ‘삼류 사민주의’라고 비판한다. (이때 구축된 미국 사회 시스템이 유럽의 사민주의 사회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동의하지만, ‘삼류 사민주의’라고 평가하는 것이 좀 불편하기는 하다)

이렇게 다르게 형성된 유럽과 미국 사민주의의 서로 다른 궤적을 간단히 살펴 보면,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방향에 대한 단초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유럽 사민사회의 다양성

  • 스웨덴: 엄밀한 의미에서는, 오직 스웨덴에서만 사민당이 1930년대 초부터 2000~2020년까지 거의 중단 없이 집권해왔다. 그 결과 사민주의의 전형인 이 나라에서 사민주의의 역사적 형태가 가장 철저히 실험될 수 있었다. 스웨덴 사례가 흥미로운 건, 1910~1911년 정치개혁 당시까지 극소수의 소유자에게 유례없이 투표권이 집중되어 있는 소유주의적 납세유권자사회로서 특히 불평등한 나라였다는 점이다. (삼원사회에서 소유자 사회로의 전환: 프랑스, 영국, 스웨덴의 예 참고) 하지만, 1950~2000년에 가장 높은 수준의 과세와 사회복지지출을 실행했던 나라가 스웨덴이다. 일반적으로, 사회적 조세재정국가의 강력한 부상이 사민주의 사회 개념의 가장 특징적인 지표다. (20세기 전반기의 대 전환, 사적소유와 불평등의 붕괴 도표 10.15 참고)
  • 독일: 19세기 말부터 당원 수에서 가장 많은 사민주의정당인 독일 사민당은 독일에서 2차대전 이후 일부 기간만 집권하였다. 그렇지만 독일의 사회국가 확립에 끼친 사민당의 영향력은 엄청난 것이어서, 1949년부터 1966년까지 계속 집권한 기민당이 공식 노선으로 ‘사회적 시장경제’를 채택했을 정도다. 이 ‘사회적 시장경제’ 노선은, 사회보장의 핵심 역할 및 주주와 노조 사이의 일정한 권력 분점을 포함하고 있다. 여기에, 사민당이 1959년의 바트고 데스베르크강령에서 국유화 및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내용을 퐇기한 것을 고려하면, 전후 독일의 두 주요 정당인 기민당과 사민당의 강령이 거의 비슷하다. 두 정당 모두 나치즘에 의한 파국 이후 나라의 재건을 가능하게 하면서 사민주의적이라 할 수 있는 발전모델을 추구했던 것이다.
  • 영국의 노동 당모델은, 무엇보다도 1945년에 노동당이 압도적 다수 의석을 확보한 클레멘트 애틀리 정부에서 국민보건서비스와 영국 사회보장국가의 토대를 확립했던 특수한 정치적 역사와 그 실천의 결과다. 이후의 상당한 문제 제기들, 특히 1980년대에 마거릿 대처가 이끈 보수당에 의한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영국의 사회적 조세재정 국가로서의 면모는 2000~2020년에도 계속 유지된다. 영국의 세수는 국민소득의 약 40%인데, 이는 독일· 프랑스· 스웨덴(45~50%)보다는 적지만 미국(약 30%)보다는 분명히 더 많다.
  • 프랑스 사회주의운동은, 1920년 투르전당대회 이후 소련을 지지하는 공산당과 소비에트주의와는 다른 형태의 민주사회주의를 채택한 사회당으로 완전히 갈라졌다. 그 후 두 당은 2차 대전 이후, 어느 정도는 사회보장제도 수립, 국유화·단체협상에서 노조의 역할, 임금체계 · 노동기구 문제를 체계화하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 사회주의자들과 공산주의자들은 1981년 좌파연합이 승리하면서 또다시 공동 통치를 하게 된다. 프랑스에서 사민주의’라는 호칭은 어느 정도는 사회주의자들과 공산주의자들 사이의 경쟁으로 인해, 지나치게 중도 적이라는 비난을 받아왔다. 독일 사민당이 이미 오래전에 포기한 국유화 가 1981년 좌파 강령의 핵심을 형성했고, 사민주의라는 개념은 자본주의 극복을 향한 일체의 진정한 열망을 포기한 것으로 비판받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차대전 이후 프랑스의 사회적 조세재정제도가 유럽 사민주의 큰 흐름의 일부라는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미국의 뉴딜: 삼류 사민주의사회

  • 1932년부터 시작된 루스벨트의 뉴딜정책, 1960년대에 이어진 존슨 행정 부의 ‘빈곤과의 전쟁’ 이후 미국에서 확립된 사회제도를 아주 넓은 의미에 서’ 사민주의적이라고 규정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 유럽의 사민주의에 비해, 민주당의 주도로 20세기 중반에 미국에서 수립된 사민주의사회는 일종의 삼류 사민주의로 보아야 할텐데, 이에 대해 더 잘 살펴 보겠다.
  • 1950~1980년 유럽이 강제과세와 사회복지지출 수준 측면에서 미국을 빠르게 추월하였다. 이는 19세기와 20세기 초에는 전혀 없었던 일이다.
  • 전후 유럽에서 표준이 된 것과 반대로, 미국에서는 보편적인 의료보험제도가 수립되지 못했다. 1965년에 채택된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 정책은 각각 65세 이상의 노년층과 저소득층 가정에 해당된다. 메디케이드의 혜택을 받을 만큼 충분히 가난하지 않거나 민간 의료보험에 가입할 정도로 부유하지 못 한 임금노동자들은 보험 사각지대에 방치되었다.
  • 1935년 제정된 연방사회보장제도는, 유럽 제도들에 비해 더 오래되었지만, 퇴직연금과 실업보험 프로그램이 훨씬 덜 포괄적이다.
  • 소득세와 상속세의 누진성은 1932~1980년에 대부분의 유럽 나라들에 비해 오히려 미국에서 더 급격했다. 미국이 누진세 면에서는 유럽보다 더 평등하고, 사회 복지 제도 측면에서는 덜 과감했다는 사실이 역설적으로 보일 수 있다.

독일 방식의 기업과 노조 간 권력 공동 소유 구조

독일 기업에서 기업과 노조 간의 권력 분점 구조는, 유럽 사민주의 내에서 독일의 사회적 제도적 모델이 갖는 중요성을 감안하면 특히 흥미롭다.

  • 1951년 철광과 석탄 부문 대기업에서 이사회 이사직과 의결권의 절반을 임금노동자 대표자들에게 배정하는 것을 의무화한 법을 최초로 도입하였다. (주: 독일 이사회는, 경영 이사회 (Board of Management)와 감독 이사회 (Supervisory Board)로 나누어지면, 노동자 대표는 감독 이사회에 참여할 수 있다. 이 글에서 ‘이사회’는 감독 이사회를 의미한다) 이것은 임금노동자 이사들이 경영진 임명과 퇴출 및 재무 승인을 비롯한 주요 감독 기능에 대하여 의결할 수 있으며, 주주들이 뽑은 이사들과 동등하게 경영 관련 자료에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후 1952년에는, 대기업 전체를 대상으로 노동자 대표자에게 이사직 3분의 1을 배정해야 한다는 의무를 제도화했다. 기민당 총리 콘라트 아데나워의 재임기(1949~1963년)에 채택된 이 두 법안에는, 특히 임금과 노동에 관련한 단체교섭에서 노조 대의원들과 기업이사회 역할에 대한 많은 조항이 포함되어 있다.
  • 이 법안들은 1969~1982년 사민당의 집권(빌리 브란트와 뒤이은 헬무트 슈미트의 재임기)을 통해 심화되었다. 이는, 1976년에 공동관리에 대한 기본법 의결로 이어졌고, 오늘날까지도 이 기본법의 전반적인 윤곽은 변하지 않은 채, 임금노동자 대표자에게 이사직과 의결권 절반을 배정해야 하는 의무를 근로자 2,000명 이상의 기업들 전체로 일반화했다 (근로자 500~2,000명 규모 기업에서는 이사직과 의결권 의 3분의 1을 배정 의무화). 이러한 이사직과 의결권은, 자본 참가 여부와 관계없이 임금노동자 대표자들에게 귀속된다.
  • 1951~1952년의 법과 1976년의 법 이후로 강제적 법 효력을 갖는 이 제 도에서 중요하게 강조해야 할 점은, 이것이 19세기 말 20세기 초 이후 독일 노조가 보여준 매우 강력한 투쟁의 결과이자, 특수한 역사적 궤적에 의한 결과라는 사실이다. 이 규칙들은, 당시 주주들과 소유자들이 이에 격렬하게 저항했고, 그리고 임금노동자들과 주주들 사이의 세력균형이 통상적 인 상황보다 조금 덜 불균형했던 역사적 정황에서 벌어진 강도 높은 사회 정치적 투쟁 이후에야 비로소 관철되었다.
  • 노조운동과 사민주의자들의 압력을 받아, 1919년 바이마르헌법은 이전 헌법에 비해 소유에 대하여 훨씬 더 사회적이고 도구적인 관점을 제도화했다. 특히 1919년 헌법은, 소유권의 실행조건과 한계를 법률로 정한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으며, 소유권은 신성불가침의 자연권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헌법에는, 공동체의 선이 필요로 한다면 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몰수와 국유화가 가능하며, 토지제도와 토지 분배도 명시적인 사회적 목적에 따라 법으로 규정된다. 1949년의 독일 기본법은 소유권이 공동체의 일반적 복지에 기여하는 한에서만 정당하다는 것을 분명히 밝히며, 생산수단의 사회화는 명시적으로 공동관리 같은 조치의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다.
  • 독일에서 1933~1945년 단절기 이후 나치즘이 몰락하고 연합군 점령 시기에, 1922년 법에 규정된 노조의 권리들이 다시 활성화되었다. 노조는 1945~1951년 에 철강 부문과 에너지 부문의 고용주들과 새로운 권리들, 특히 기업 경 영기관에 대한 노사의 동수 참여를 협상했다. 협상과 투쟁을 통해 획득한 이 새로운 권리는 1951년 법에 그대로 입안되었다.

노르딕 국가의 공동소유 방식

  • 스웨덴의 경우, 1974년 법이 1980년과 1987년에 확장되어, 25명 이상 의 임금노동자가 있는 모든 사업장에서 이사회 이사직 3분의 1을 임금노 동자로 배정한다. 스웨덴 기업은 단일이사회가 지배하는데, 이러한 소수 대표성이 때로는 독일식 감독이사회 동수제보다도 더 진전된 실용적 통제 를 가능케 할 수 있다. 게다가 이 규칙들은 독일과는 달리 훨씬 더 영세한 기업에도 적용된다(독일은 500명 이상의 임금노동자가 있는 기업 들만 해당된다). 덴마크와 노르웨이에서는, 각 각 35명과 50명 이상의 임금노동자가 있는 기업들에서 임금노동자들이 3분 의 1 이사직 권리를 갖는다. 오스트리아에서도 비율은 3분의 1이지만,이 규칙은 임금노동자가 300명이 넘을 때만 적용되는데, 이는 적용 영역 을 거의 독일과 비슷한 수준으로 한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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