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과 이데올로기’ — 20세기 유럽 대비 미국 우위와 교육의 상관 관계

허진호 (Jin Ho Hur)
10 min readMay 21, 2021

19세기 후반 미국은 국력이 영국을 넘어서고, 20세기 초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 집권 시기를 전후하여 사실상 패군국으로서 영국을 계승한다.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미국이 영국을 밀어내고 서반구에서 지배적인 우치를 차지하게 만드는 데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힘의 상관관계에 미묘한 변화가 생긴 덕분이었다. 19세기의 마지막 30년 사이에 미국은 남북전쟁의 폐허를 극복하고 경제적 거인이 되었다. 1850년에 영국과 미국의 인구는 거의 비슷했다. 그러나 1900년 경에는 미국의 인구가 영국의 두 배가 되었다. 1870년에 미국 경제가 영국을 따라 잡았고, 1914년까지는 규모 면에서 영국의 두 배가 될 정도로 성장했다. 1880년에는 영국이 전 세계 공산품 생산의 23%를 차지했지만, 1914년에는 시장점유율이 13%로까지 떨어졌고, 대신 미국의 시장점유율은 32%까지로 올랐다. (p297 그레이엄 엘리슨, 예정된 전쟁, 2017)

이 이후 미국은 영국을 계승한 패권 국가로서, 2차 대전 직후 전세계 GDP 비중 50%를 차지할 정도로 압도적인 우위를 가지는 경제력을 보유하게 된다.

피케티는, 그 배경에 19세기 후반부터 미국 생산성이 유럽의 모든 나라를 압도하는 수준으로 높았던 것이 그 핵심 요인이었다고 보며, 미국이 그렇게 높은 생산성을 유지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이유로 19세기 초부터 미국에서 유럽의 모든 나라보다 훨씬 높은 교육 수준을 유지한 것을 지목한다.

이러한 해석과 분석은,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부강한 나라를 지향하는 어느 나라에도 적용될 수 있는 중요한 내용이면서도, 폴 케네디의 역저 “강대국의 흥망” 에서와 같이 한 나라가 부강해지는 핵심 요소를 분석할 때 (예를 들어 19세기 프러시아의 부상에서의 교육의 역할등, 일부 언급은 되지만) 전반적으로 그렇게 비중 높게 다루어지지 않는 내용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이슈는 주목할만 한 중요한 점이라고 보고, 이 점에 대한 피케티의 분석을 아래에 요약한다.

배경

불평등주의체제의 역사와 불평등 구조의 진화와 관련해 교육이 지닌 핵심 역할에 대하여, 미국과 유럽 간에 두 가지 주목할 점이 있다.

  • 20세기의 많은 시간 동안 미국이 서유럽 및 세계 다른 곳에 비해 교육 에서 상당한 우위를 누려왔다. 이는 19세기 초 미국의 기원까지 거슬러올라가며, 20세기 미국과 유럽 간 생산성, 평균 생활수준 격차를 설명한다.
  • 이후 이런 우위는 20세기 말에 사라져, 고액 기부금을 받는 대학들에 진학한 사람들과 중하위계급 간의 교육투자 격차와 더불어, 미국에서 이제 유례없는 교육 계층화가 발생했다.

미국의 생산성 우위

  • 1950년대 초, 독일과 프랑스의 노동생산성은 미국의 50% 수준, 영국은 미국의 60% 수준에 못 미쳤다. 그 후 1960년대와 1970년대에 독일과 프랑스는 영국을 추월 했고, 1980년대 말에는 미국을 따라잡았다. 1990년대 초부터 독일, 프랑스의 노동생산성은 미국과 대등한 수준으로 거의 안정된 반면, 영국의 생산성은 미국 대비 20%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
도표 11.3 노동 생산성: 미국 유럽 1950~2015년
도표 11.4 노동 생산성: 미국 대비 유럽 각국의 변화
  • 20세기 중반 유럽의 생산성 수준은 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았는데, 이는 역사적으로 오래되었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이미 그 격차가 매우 컸다. 1900~1910년경 프랑스, 독일의 국내총생산, 1인당 국민소득 모두 미국의 60~70% 수준이었다. 영국은 약 80~90%. 영국은, 1차산업혁명기에 우위를 확보하여 19세기 세계 최고 수준이었으나, 1차대전 이전 수십 년간 가속적으로 저하되어 1900~1910년 이미 미국에 추월당했다.
  • 1950~1960년대까지 지속적으로 커진 생산성 격차는 역사적으로 미국이 노동력 훈련에서 앞섰다는 점이 주 요인이다.

미국 교육의 우위

미국 취학률의 우위

  • 19세기 초, 미국 초등학교 취학률은 1820년대 거의 50%, 1840년대 70%, 1850년대 80% 이상이었다. 이 취학률은 남여를 합쳐 5~11세의 초등학교 취학아동 비율로, 흑인 인구를 빼면 백인의 초등학교 취학률은 1840~1850년부터 이미 90% 이상으로 보인다. 같은 시기 영국·프랑스·독일 초등학교 취학률은 20~30% 수준이었다. 이 세 나라는 1890~1910년에야 보편적인 초등학교 취학률에 도달한다.
  • 미국의 교육 우위는, 프로테스탄트적 종교적 기원도 있지만, 무엇보다 18세기 19세기에 미국에 이민해 온 유럽인들은 그 시대 유럽 인구에 비해 평균적으로 교육 수준이 높았고 그 영향으로 자녀 교육에 대한 투자도 높았던 것으로 보인다.
  • 유럽 대비 미국의 교육상의 우위는, 남성 보통 선거도 매우 빠르 게 확대되었다. 1835년 토크빌은 ‘교육과 토지소유 확대를 미국에서 민주주의 정신이 꽃필 수 있게 해주는 기본적인 두 힘’으로 보았다. 실제 데이터를 보면, 미국 대선에서 백인 성인남성 참여율은 1824년 26%, 1832년 55%, 1844년 75%로 높아졌다. 유럽에서는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이 수준의 참여율에 이르렀다. 이로 인해 지방세에 의한 학교 재원 조달은 더욱 강하게 대중의 지지를 받게 된다.

20세기 미국 교육의 우위

  • 1900~1910년 유럽 나라들이 막 초등교육 보편화를 이룬 시기에, 미국은 이미 중등교육까지 보편화하면서 한참 앞서 있었다. 중등학교 취학률이 1920년대 30%, 1930년대 40~50%, 1950년대 말 1960년대 초에는 거의 80% 달했다. 2차대전 직후에 미국은 이미 중등학교 취학 보편화를 달성하였다. 같은 시기 영국, 프랑스의 중등학교 취학률은 20~30%, 독일은 40% 수준. 이들 세 나라에서 1980~1990년에 이르러서야 80%의 중등학교 취학률을 달성한다. 반면 일본은 아주 빠르게 따라잡아서, 중등학교 취학률이 1950년대 60%, 1960년대 말 1970년대 초에는 80%를 넘어 간다.
  • 1871년 프로이센이 프랑스 상대로 승리한 것, 1865년 미국 북부가 남부에 대해 승리한 것 모두, 영국과 프랑스의 엘리트들 사이에서 교육의 우위로 해석되었고, 이후 의식이 바뀌기 시작한다.

교육 예산 투자의 차이

  • 하지만, 교육 예산 통계를 보면, 영국의 교육투자는 1차대전까지 계속해 서 현저하게 지체되었다. 1870년 교육에 대한 공적지출은, 미국은 국민소득의 0.7% 이상인 반면, 프랑스는 0.4% 이하, 영국은 0.2% 이하. 1910년에는 미국이 1.4% 에 달한 반면, 프랑스는 1%, 영국은 0.7% 수준에 불과했다.
  • 비교를 위해서, 1815~1914 년에 영국이 국채증서 소지자에게 이자를 지급하고자 국민소득의 2~3% 를 매년 지출하였고, 1980~2020년 유럽 주요국들에서 국민소득의 6%에 육박하였다.
  • 특히 영국의 교육제도는 상류층이 다니는 사립학교와 공립학교 사이에서 나타나는 아주 강한 계층화 되어 있다. 이는 이 나라가 1990년대 말 2000년 대 초부터 시행한 교육예산 투자 노력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생산성 지체 를 겪고 있는지 설명해준다.

20세기 후반 미국 불평등의 악화

1980년 이후 미국 중하위층의 쇠락

  • 미국이 1980년 이후 선진국 중에서도 가장 불평등한 나라가 된 배경에는 고등교육 진학에서의 매우 극단적인 교육 계층화가 있다고 본다
  • 미국은 1950년대까지만 해도 프랑스 같은 나라에 비해 불평등 정도가 비슷하거나 더 낮았고, 그러면서도 생산성과 생활수준은 평균적으로 2배 더 높았다.
  • 2010년대에 미국은 이전보다 훨씬 더 불평등 한 나라가 되었고, 생산성 면에서 미국이 갖고 있던 우위는 완전히 사라졌다
도표 11.1: 소득 격차: 주요 국가 상위 10% 대 하위 50%의 비중 차이
도표 11.2: 소득 격차: 미국, 프랑스 상위 10% 대 하위 50% 비중 차이
도표 11.3: 노동 생산성: 미국 유럽 1950~2015년
도표 11.4 노동 생산성: 미국 대비 유럽 각국의 변화
  • 특히, 미국에서 1980년 이후 상위 1% 소득의 폭등과 하위 50% 소득의 큰 폭의 추락이 일어 났다.
  • 미국에서 상위 1% 소득 급등보다, 가장 중요한 현상은 하위 50%의 추락이다. 사실상 상위 1% 몫의 상승은 거의 배타적으로 가난한 50%를 희생시키면서 이루어졌다. 특히 가난한 50%의 구매력이 1960년대 말 이후 미국에서 거의 완전히 정체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도표 11.5)
도표 11.5: 미국 소득 하위 50% 비중의 급격한 하락
도표 11.6 유럽 소득 하위 50%와 상위 1% 1980~206년
도표 11.7 미국 소득 하위 50%와 상위 1%. 1960~2015년

유럽과의 비교

  • 유럽 역시 지난 수십 년간 일어난 교육 팽창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놀라운 것은, 교육 부문에 대한 공적지출이 1870~1910 년 국민소득의 1~2%에서 1980~1990년 5~6% 수준으로 상당한 증가를 이루었던 것이, 1980~1990년 이후로는 증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모든 서유 럽 나라에서 교육투자가 1990~2015년에 국민소득의 약 5.5~6%로 정체되어 있다.

의미

  • 20세기에 실시된 강력한 누진세제는 19세기, 20세기 초 소유 및 소득의 극단적 집중을 끝내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불평등의 이러한 감소는 1950~1980년에 이때까지 관찰된 적 없는 고도성장기를 열었다. 적어도 1차대전 이전 당시 대다수 엘리트들의 지배적 담론과 달리, 매우 높은 불평등은 성장에 필수적인 것이 전혀 아니었음을 확인하였다.
  • 1980~1990년 레이건주의의 보수혁명의 실패에 대해서도 모두가 이론상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이후 미국의 성장은 반토막 났으며, 이 정책이 없었더라면 성장이 훨씬 더 지체됐을 것이라는 생각에는 전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 무엇보다도, 각 나라들의 교육 및 생산성 궤적 비교를 통해 알 수 있듯이, 19세기와 20세기 대부분의 기간에 미국에서 교육 우위의 역사적 역할은, 교육에서 평등한 투자 확대가 생산성 우위와 성장에 얼마나 결정적인지를 보여준다. 미국이 19세기와 20세기 초에 유럽보다 더 생산적이고 더 빠르게 발전한 것은, 미국이 초중등 교육 보편화에서 반세기 이상 유럽보다 앞섰기 때문이다.
  • 이러한 우위는, 생산성 격차와 마찬가지로, 20세기 말에 고갈되었다 . 더 일반적으로 보자면 1950~1990년에는 미국과 유럽 전체에서 이전에 비해 훨씬 높은 수준의 교육투자가 이루어졌다. 바로 이것이 이 기간의 예외적으로 높은 성장 수준을 설명하는 요인이라고 본다.
  • 반면 고등교육을 받으려는 이들이 점점 더 늘어났음에도 1990~2020년 교육투자가 정체되어 버림으로써, 결과적으로 전반적인 생산성 증가 둔화가 일어났다.
  • 요약하면, 지난 두 세기의 역사를 보면 불평등한 소유 신성화보다는 평등과 교육이 오히려 발전을 주도하는 요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