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의 원유’ 반도체 생산을 둘러 싼 지정학적 역학 관계에 대하여
‘실리콘밸리의 교수님'으로 불리는 Steve Blank가, 20세기의 원유에 비견할만 한 21세기의 반도체 공급을 확보하기 위한 미-중 간의 직접 충돌 가능성의 제기하였다. The Chip Wars of the 21st Century — War on the Rocks
이 글에서는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여 TSMC의 생산 능력을 장악하여 글로벌 반도체 공급에 대한 주도권을 장악할 경우, 글로벌 산업 뿐 아니라 미국도 그 지정학적 우위를 계속 유지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위기론을 제기하였다.
최근 차량용 반도체 수급 문제로 전 세계 차량 생산이 중단될 만큼 주요 산업 분야에 반도체 공급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와 관련된 중요한 이슈는, 글로벌 반도체 생산 Fab 시장 점유율이 대략 TSMC 50%, 삼성전자 30%, Intel 포함 나머지 20%정도로 볼 수 있고,
이 중 어느 업체라도 반도체 생산에 심각한 차질이 생기면 꽉 짜여져 돌아 가는 글로벌 공급망의 성격상 여러 관련 업체의 생산 차질을 빚는다는 점이다.
TSMC 현황:
- 대만 4개 fab sites → 각각 6~7 foundries (웨이퍼 연 13m 장 생산 규모)
- 아리조나 신규 fab: (’24까지 목표대로 진행된다는 가정하에)웨이퍼 연 250k 생산 (TSMC 전체 생산량의 3% 불과)
특히, 전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하는 중국의 반도체 수요를 보면, 반도체 공급에 차질이 생길 경우 중국 산업 뿐 아니라 그 생산에 의존하는 글로벌 테크 분야 전체에 미칠 영향은 상상을 초월한다.
중국 반도체 수요: 전 세계 생산량 61% 소비 (‘19), 수입 금액 $310b (’18) (비교: 미국 11%, 유럽 9%, 일본 5.4%, 기타 13.7%)
이러한 한계를 인식한 중국 정부는, Made in China 2025, National IC Plan 등 반도체 분야의 자체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하여 전력을 기울이고 있고, 중국 반도체 경쟁력 확보를 목적으로 하는 China Integrated Circuit Industry Investment Fund (‘BigFund’)를 $51b ($22b (’14) + $29b (‘19)) 규모로 확장하는 등 다양한 정책적 노력을 하고 있다.
미국은 이를 막기 위한 여러가지 제재를 계속 하고 있다. (TSMC를 주 타겟으로 하는) ‘미국 기술을 사용하는 반도체 생산업체의 Huaiwei 공급 제한'하는 제재 정책이 가장 최근에 일어난 일이다.
결국, Steve Blank가 이야기하였듯이, 이제 21세기의 반도체 생산은 20세기의 원유와 같은 전략적 의미를 가진다는 점을 깨달을 수 있다.
“Controlling advanced chip manufacturing in the 21st century may well prove to be like controlling the oil supply in the 20th”
20세기 초반 중동 석유 발견의 역사, 그리고 그 이후 중동을 둘러 싼 분쟁의 역사를 보면, 20세기에 원유 확보가 국제 정치의 지정학적 역학 관계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였는지 이해할 수 있다.
- 1901년 영국 페르시아 (이란) 석유 채굴권 확보, 1908년 석유 발견 → 1934 ‘앵글로-페르시아 석유회사’ 설립 → 1954년 British Petroleum (BP)가 됨
- 1912년 ‘투르크 석유회사’ 설립 → 1925년 ‘이라크 석유회사’로 변경. 이라크 채굴권 확보 → 1927년 석유 발견
- 1928년 영.미.프랑스 레드라인 협정 체결하여 1948년까지 유지. 이후, OPEC으로 대체됨.
영국 앵글로-페르시아 석유회사 (현재 BP), 영국-네덜란드 로열 더치 셸, 프랑스 석유회사 (현재 Total), 미국 액슨모빌, 아르메니아 석유회사 5개사간 체결
터키, 이라크, 시리아, 아라비아 반도에서의 공동 시추를 위한 협정으로, 중동 석유 채굴권에 대한 배타적 권리를 확보하기 위한 국제 공조 체제 - 1932년 사우디아라비아 건국 → 1935년 미국 스탠다드오일 (현재 Chevron) 채굴권 확보 → 1938년 석유 발견
- 쿠웨이트: 영국 ‘앵글로-페르시아 석유회사'의 독점권 관할 지역 → 1938년 석유 발견
중동 석유 체제는, 원유 확보를 둘러싼 지정학적 역학 관계 뿐 아니라, 미국 달러 기축 통화 시스템이 유지되는 데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44년의 브레튼우즈 시스템으로 시작된 미국 달러 기축 통화 시스템은, ‘71년 미국의 금태환 중지 선언 이후 기축 통화 역할을 서서히 잃어 갈 수 있는 상황이었으나, ‘74년 미국-사우디아라비아 합의로 시작된 ‘Petro Dollar 시스템’을 통하여 계속 달러가 글로벌 기축 통화로 동작하는 근간이 되었다.
Petro Dollar 시스템: The Fraying of the US Global Currency Reserve System — Lyn Alden
글로벌 어느 나라든지 중동에서 석유 수입을 원하는 나라는 미국 달러로 결제할 수 밖에 없고, 결국 금 태환 여부와 관계 없이 미국 달러는 국제 무역 거래의 default 결제 수단 역할을 유지할 수 있었다.
‘74년 미국-사우디아라비아 합의로 시작된 Petro Dollar 시스템은, 사실상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금 등의 다른 가치로 태환되지 않는) 순수 fiat money만으로 글로벌 무역 거래가 이루어지는 시스템이 되었다. 그 결과, 미국은 GDP 비중 24%, 무역거래 비중 11% 임에도, 글로벌 거래에서 달러 비중은 ‘18년 기준 40~60% 수준에 이른다.
Steve Blank가 제기한 미.중간의 긴장 고조로 인한 중국의 대만 무력 침공 가능성에 대하여, 반도체 fab의 기술적 특성 상 중국이 (대만 무력 침공을 통하여) TSMC를 장악한다고 하더라도 실질적으로는 중국이 첨단 반도체 생산력을 통제할 수 없다는, 좀 다른 시각의 의견이 아래의 글에서 제시되었다.
Why a Chinese invasion of Taiwan would be a catastrophe for China and the world — doxa
그 논지는:
- 반도체 fab은 물리적 생산 설비 외에 공정, 인력의 노하우 등을 통해서 생산 수율을 유지할 수 있는데, 중국이 무력으로 TSMC를 장악할 경우 이 생산 노하우가 와해되면서 사실상 TMSC 대만 fab은 그 의미를 잃게 된다.
- TSMC가 중국에 장악되고 나면, 이후 지속적인 기술 업그레이드에 필요한 반도체 생산 장비 공급이 지속되어야 하는데, 이들 공급사가 대부분 미국, 유럽의 기업으로서 TSMC에는 이후에 기술 공급을 중단하게 되어, TSMC 생산 기술은 (at best) 중국의 무력 장악 시점 수준에 머무르게 될 것이다.
물론, TSMC가 중국의 통제권에 들어 가는 경우 당장 글로벌 반도체 공급에 심각한 차질이 생길 것이고, 이는 미국을 포함한 글로벌 경제에 오랜 기간 큰 충격을 줄 것이다. TSMC이 미국 아리조나에 새로 건설하기로 한 fab은 일정대로 진행되더라도 ‘24년 목표 생산 규모가 현재 TSMC 생산 규모의 3%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에 TSMC 공급 차질 문제를 해결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러한 결과는 충분히 예상되는 시나리오이고 그 것이 중국에 오히려 해가 될 것이라는 예상이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에 이성적으로 판단하면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은 충분히 낮을수 밖에 없지만,
과거 역사에서 (1,2차 세계대전을 포함해서) 대부분의 전쟁이 이성적인 판단에 의해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최악의 가능성에 대한 대비도 필요해 보인다.
만의 하나 이런 사태가 발생할 경우, 우리나라에 미칠 영향이 가장 중요한데,
우리나라는, 글로벌 시장 점유 30% 수준을 차지하는 삼성전자 Fab으로 인하여 그 전략적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어 의도하지 않게 우리도 그 분쟁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아 보임. 즉, 20세기 동안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이라크 등의 주요 산유국이 차지하였던 지정학적 위치에 우리나라가 선다는 의미가 된다.
비즈니스 측면에서는 단기적으로 TSMC의 어려움이 삼성전자의 기회가 될거라 볼 수도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20세기 중동 산유국과 같이 강대국의 지정학적 전략의 대상이 됨으로써, 우리의 방향, 전략에 대하여 우리 스스로의 선택권보다 강대국의 지정학적 판단에 의하여 좌지우지됨으로써 더 큰 어려움에 빠질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