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과 이데올로기’ — 20세기 전반기의 대 전환, 사적소유와 불평등의 붕괴

허진호 (Jin Ho Hur)
12 min readMay 21, 2021

20세기 유럽.미국의 소득과 소유 구조의 변화는 극적인 변화를 거쳤다.

간단히 요약해 보면:

  • 19세기 소유자 사회로의 전환을 거치면서, 20세기 초 (벨에포크 시기) 소득과 소유의 불평등은 역사상 가장 높은 수준이 되었다.
  • 1914년부터 1945년까지 양차 대전, 전간기의 불안정 및 대공황을 거치면서 상위 계급의 사적 소유 비중은 폭락하였다. 이는, 크게 양차 대전 기간의 자산 파괴, 전쟁 이후 직접 자산 몰수 및 특별세 등에 의한 민간 자산 몰수, 전후 유지된 극도로 높은 수준의 인플레이션, 세가지 요인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 20세기 초반 (1차대전 등의 외적 요인 등에 의하여) 역사상 처음 본격 제도화된 누진세는, 2차 대전 이후 보편화되면서 소유 불평등을 개선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하게 된다.
  • 특히, 2차대전 이후 국민소득 대비 세수 수준이 (기존 야경국가의 10% 수준을 넘어) 미국 30%, 서유럽 평균 47% 수준까지 높아져 ‘조세 재정 국가’ 체제가 가능해지면서, 조세 재정 기반의 사민주의가 유럽 중심으로 보편화되어 소유 불평등 감소에 기여하였다.
  • 물론, 유럽에서 노르딕 국가 중심의 사민주의, (미국에 더 가까운) 영국, 그 중간 수준의 독일, 프랑스 등 각 국가 별로 그 궤적이 다소 다르게 진행되었다.
  • 소유 불평등이 감소하는 이 추세는 사실상 인류 역사상 최초로 일어난 현상으로, 역사상 처음으로 ‘중산층’이 집단으로서 경제적, 정치적 주도권을 가지는 계층으로 성장하는 기반이 되었다. (이 내용이 전작 ‘21세기 자본론’의 핵심 내용이다)
  • 이 추세는 1980년 레이건-대처로 대표되는 보수주의 체제가 미국, 영국 중심으로 확산되기 시작하면서 다시 역전되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국가 별로 궤적이 다르기는 하지만) 소유 불평등 수준이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다.

그 과정, 내용을 간단히 살펴 보면:

20세기 전반기 유럽과 미국의 소득 및 자산 불평등의 급감

1914~1945년 기간 사적소유 (민간 자산) 상위 계급의 소득 및 소유 비중이 폭락하였다.

  • 이 중 전쟁으로 인한 물질적 파괴는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고, 양차 대전을 거치며 긴급하게 도입된 여러 제도들이 핵심 역할을 하였다.
  • 자산 몰수 & 국유화, 임대료와 부동산 가격 통제, 인플레이션에 의한 국채 비중의 감소, 민간자산에 대한 특별과세 등이 중요한 것들이고, 그 중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누진세이다. 20세기 전반기, 특히 2차 대전 직후, 상위 소득 및 자산에 대한 강도 높은 누진세 (최고 세율 70~80% 상회)가 도입되어, 1980~1990년까지 유지되었다.
  • 이 충격 이후, 1914년까지 지배적이었던 ‘시장경쟁에 대한 절대적 믿음’, ‘사적소유를 신성화하는 이데올로기’로는 더 이상 되돌아 갈 수 없게 되었다.
  • 이 큰 변화는, 이후 유럽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사민주의, 미국에서는 뉴딜정책이라는 ‘새로운 길’로 이어진다.

사적 소유의 몰락과 불평등의 감소

미국, 유럽의 사적 소유의 몰락과 불평등의 감소는 아래의 그래프로 쉽게 이해할 수 있다.

  • 미국, 유럽의 소득 상위 10% 비중 추세를 보면, 20세기 초에는 유럽이 좀 더 불평등하였으나, 1940–45년 급격한 자산 붕괴를 거쳐 1980년까지 지속적으로 낮아졌다.
  • 1980년 이후 상승 추세로 돌아섰으나, 미국과 유럽의 궤적은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 2010년대 중반 기준, 미국은 불평등 수준이 20세기 초반 수준을 넘어섰다고 볼 수 있다. (도표 10.1)
도표 10.1 1900~2015년 소득 불평등: 미국, 유럽 소득 상위 십분위 비중
  • 유럽에서도 각 국가 별로 차이를 보이고 있어, 영국은 미국에 가장 가까운 궤적을 보이고 있고, 스웨덴 (노르딕)이 가장 낮은 수준의 불평등, 프랑스, 독일이 그 중간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도표 10.2, 도표 10.3)
도표 10.2 1900~2015년 소득 불평등: 미국, 유럽 소득 상위 십분위 비중
도표 10.3 1900~2015년 소득 불평등: 미국, 유럽 소득 상위 백분위 비중
  • 소유의 불평등 수준은, 소득 불평등 대비 상대적으로 완만한 속도로 1980년까지 감소하여 왔고, 이후 소득 불평등과 비슷한 방향으로, 하지만 훨씬 덜한 수준으로, 조금씩 악화되고 있다. (도표 10.4, 도표 10.5)
도표 10.4 1900~2015년 소유 불평등: 미국, 유럽 소유 상위 십분위 비중
도표 10.5 1900~2015년 소유 불평등: 미국, 유럽 소유 상위 백분위 비중
도표 10.6 1900~2015년 소득과 소유의 불평등: 프랑스 상위 십분위
도표 10.7 1900~2015년 소득과 소유의 불평등: 프랑스 상위 백분위

사적 소유의 몰락 과정

사적 소유 총 규모의 변화:

  • 18~19세기 내내, 민간 자산 (사적 소유) 규모는 국민소득의 6~8년치 수준을 유지하였다.
  • 19세기 말 20세기 초 (벨에포크 시기)에는 민간자본이 특히 융성하여 이 수치가 피크에 달했다. 프랑스와 영국은 국민소득 7~8년 치, 독일은 약 6년 치에 달했다.
  • 특히 1914년경 벨에포크 시기는 상당한 규모의 국제투자가 일어나서, 각 국의 국제투자 규모는, 국민소득 대비 프랑스는 1년 치, 영국은 거의 2년 치, 독일은 반년 이하 규모 수준이었다.
  • 이러한 민간 자산 규모는, 1차대전 기간과 1920년대 초를 거치며 1차 붕괴되었고, 이후 1920년대 조금 회복되었다가 1930년대 대공황 위기 및 2차대전과 전후 기간을 거치면서 붕괴되었다 (도표 10.8)
  • 2차 대전 이후인 1950년 민간 자산 규모는, 프랑스와 독일은 2년 치 국민소득 규모에 불과하고, 영국은 국민소득 3년 치로 축소하였다.
  • 이 중 양차 세계 대전에 의한 물리적 파괴는, 사적 소유 붕괴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전쟁의 직접 피해가 컸던 프랑스, 독일은 1/4 ~ 1/3 사이, 영국은 몇 퍼센트 정도에 불과했다.
도표 10.8 서유럽 GDP 대비 총민간 자산 1870~2020년

사적소유 붕괴 주된 요인:

  • 사적 소유 붕괴 요인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양차 대전 전쟁에 의한 파괴, 자산 몰수, 인플레이션
  • 하나는, 일련의 몰수와 국유화. 소유자들의 사적소유 가치 감소와 소유자들의 사회적 권력 축소를 명시적으로 지향하는 정책들이다. (예컨대, 2차대전 후 민간 자산에 대하여 1회성으로 80~90% 수준까지 몰수한 특별세)
  • 다른 하나는, 1914~1950년의 저조한 민간투자, 전비 충당등을 위해 국채 매입 하였던 자산은, 전후 인플레이션 등의 이유로 인해 10–20년에 걸쳐 자산 가치가 거의 사라졌다.
  • 프랑스와 독일에서는, 전쟁에서의 파괴가 약 1/3을 차지하고, 자산 몰수와 인플레이션은, 프랑스, 독일에서는 각각 1/3 정도, 영국에서는 각각 거의 절반의 영향을 미쳤다

민간 자산 몰수, 특별세

민간 자산 몰수는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진다. 특별세 형태의 몰수와 직접적인 민간 자산 몰수 및 국유화.

전후 민간 자본에 대한 국가별 특별세는 아래와 같은 것들이 있었다.

  • 1,2차 대전 전후 국채 부담을 줄이기 위해 각 국은 민간 자산에 대한 특별세 부과
  • 1919~1923년: 이탈리아, 체코슬로바키아, 오스트리아, 헝가리 최대 50%
  • 독일은 1949~1952년 확립 → 1980년대까지 시행
  • 1946~1947년 일본 유가증권 대상으로 최대 90% 과세
  • 1945년 프랑스 ‘국민연대세’ 1945년 8월 단 1회 징세한 누진세로, 상위 자산 20%에 대하여 최대 100% 징세하여, 사실상 상위 계층의 자산 대부분 몰수하였다

유럽에서 일어난 자산 몰수는 아래와 같은 사례가 있었으나, 몰수.국유화 보다는 특별세가 유럽의 사적 소유 몰락에 더 큰 영향을 미쳤다.

  • 1917년 볼셰비키 혁명에 의한 (특히 프랑스에서 대규모 대여한) 러시아 국채 몰수
  • 1956년 이집트 나세르 대통령의 수에즈운하 국유화
  • 1945년 2차대전 후 르노자동차 공장 국유화 및 1944년9월 르노 창업자 부역자로 체포
  • (토지 개혁도 유럽에서의 자산 몰수와 같은 결과를 내는 자산 몰수에 해당하는데, 한국, 일본 등 동북아의 경우는 대체로 성공적이었던 것에 비하여, 동남아, 남미, 아프리카에서는 실패한 토지 개혁 사례가 많다. 필리핀, 칠레, 짐바브웨 등. https://namu.wiki/w/%ED%86%A0%EC%A7%80%EA%B0%9C%ED%98%81 )

국채, 인플레이션

전쟁으로 인한 국채 규모의 증가:

  • 1914~1945년 유럽의 민간저축 대부분은 전비 충당 위한 국채 매입에 사용되었다.
  • 각 국 국채 규모의 GDP 대비 비율을 보면, 1914년 영국, 프랑스, 독일 60~70%. 미국 30% 이하 수준에서, 1945~1950년 미국 150%, 독일 180%, 프랑스 270%, 영국 310%까지 증가하였다 (도표 10.9)
도표 10.9 1850~2020년 국채 추이

전후 인플레이션:

  • 1914~1945년 기간 연평균 인플레이션을 보면, 프랑스 13% (물가 100배), 독일 17% (물가 300배), 영국, 미국 3% (물가 3배). 1945년까지 인플레이션 수준이 아주 낮았던 영국은, 1970년대 인플레이션 (10~20%) 기간 중에 국채의 대부분을 해소할 수 있었다
  • 특히, 프랑스는 1945~1948년 기간 인플레이션 수준이 50%를 넘어, 국채 규모가 1945년 국민소득의 270% 수준에서 1950년 30% 이하로 급감하여서, 1945년 국민연대세 특별세보다 국채 감소 효과가 클 정도였다.

누진세의 역할

1914~1945년 민간 자산 규모 하락에 의한 소유구조의 분산 과정을 보면, 전비에 의한 국채 해소에는 인플레이션이, 소득/소유의 불평등 해소에는 누진세가 가장 큰 역할을 차지하였다.

누진세는 프랑스 혁명때 처음 시도되었다.

  • 1789년 이후 국민공회에서는 소득과 자산에 과세하는 누진적 과세표에 관한 공개 토론회가 있었고, 1793~1794년 상위 소득에 70%에 달하는 강제 공채 시행하기도 했고,
  • 하지만, 프랑스 혁명이 귀족과 사제에 대한 특권 종식에는 어느 정도 성공하였지만, 제대로된 누진세는 결국 실행하지 못하였다.

양차 대전 과정에서 누진세의 창안:

  • 대상: 소득세. 상속세
  • 소득 & 상속 세율의 변화 추세: 1900년: 10% 이하 → 1920년: 상위 소득 30~70%, 상위 상속 10~40% → 1930~1940년 뉴딜정책 이후 증대
  • 1932~1980년 최고 세율을 보면, 미국 소득 81%, 상속 75%, 영국 소득 89%, 상속 72%, 프랑스 소득세 1914년 2%, 1920년 50%, 1924년 60%, 1925년 72% (소득세: 도표 10.11. 상속세: 도표 10.12 참고)
도표 10.11 누진세의 창안: 소득세 최고 세율의 변화 1900~2018년
도표 10.12 누진세의 창안: 상속세 최고 세율의 변화 1900~2018년

사회적 조세재정국가의 발흥: 소유자 사회에서 사민주의사회로의 전환

누진세로 인한 세수의 증대는, 기존에 국민소득 10% 이내 수준의 세수 기반으로 ‘야경 국가’ 수준에 머무르던 각 나라들이 큰 폭으로 증가된 세수 기반으로 사민주의 사회로 전환하는 기반이 되었다.

국민소득 대비 유럽, 미국의 총 세수 규모 추이를 보면:

  • 20세기 초반까지 10% 이하 유지하다가, 1920~1930년대 20%로 늘어난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1950~1960년 공통적으로 30% 수준에 이르렀고, 이후 1970~1980년까지 국가마다 다른 수준으로 증가하여, 미국 30%, 영국 40%, 독일 45%, 프랑스 50%, 스웨덴 55%로 국가별로 다른 궤적을 밟았다.
도표 10.14 서유럽 조세재정국가의 시작 1870~2015년
  • 서유럽의 세수 수준은 국민소득 대비 평균 47% 수준인데, 이를 사용 분야를 개략적으로 나누어 보면, 치안, 행정등의 기본 야경국가 기능 10%, 교육 6%, 퇴직,장애인연금 11%, 보건 9%, 사회적이전 (가족, 실업) 5%, 기타 사회복지지출 6% 를 구성한다.
  • 이 구성을, 기존 야경국가의 10% 수준, 미국의 30% 수준과 비교해 보면, 유럽에서 2차대전 이후 발전한 사회 복지, 교육, 연금제도에 기반한 사민주의 체제가 이렇게 늘어난 세수에 기반한 것임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도표 10.15 유럽 GDP 대비 세수 사용 비율의 변화
  • 조세재정연구원의 한국 조세 부담율 데이터를 보면, 2002년 기준 조세부담율은 22.7%로 OECD 30개 국가 중 7번째로 낮은 수준이고, 위의 세수 부담율과 비교할 수 있는 국민부담율 (조세부담율 + 사회보장 관련 부담)은 28.2%로 OECD 30개 국가 중 5번째로 낮은 수준이다. 한국보다 국민부담율이 낮은 국가는, 멕시코, 미국, 일본, 아일랜드 4개 나라뿐이다. 즉, 우리나라는, 세수 부담비율 평균 47% 수준의 유럽 조세재정국가보다는, 30% 수준의 미국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국민부담률 국제 비교: 2002년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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