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과 이데올로기’ — 삼원사회의 자산 소유 구조

허진호 (Jin Ho Hur)
7 min readMay 16,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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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원 사회 (Three Estates)는 중세에서 근대로 전환되기 전까지 기독교 유럽 사회의 기반이 된, 성직자, 귀족, (농민과 부르조아로 구성된) 평민, 세 계층으로 구성된 신분 사회를 의미한다.

우리가 삼원사회의 구조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1) 삼원 사회의 불평등구조와 현대사회의 현행 불평등구조가 흔히들 상상하는 것 보다는 기본적으로 그다지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 그리고 (2) 삼원사회의 소멸 과정이 나라와 지역 및 종 교적 식민적 포스트식민적 맥락에 따라 극도로 다른 형태를 띄며 이는 현대의 우리 시대에도 깊은 흔적을 남겼다는 점이다. (p80)

삼원사회의 확립 과정

삼원사회는 1000년경에서 1350년까지 기간 중, 노예 및 농노 제도가 사라지고 대부분의 노동력은 하나의 통합된 신분으로 자유 신분을 가진 노동력화되면서 형성되었다고 본다.

이 과정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은, 유럽 인구의 1/3 이상 사망한 1347~1352년의 흑사병으로 인구가 급감하여 생산의 주축을 담당한 노동 인구가 상대적으로 희소해졌고, 이로 말미암아 1350~1450년 인구 정체 기간 중 노동 계급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1381년 영국 농민 반란 등을 거치며) 노예제, 농노제가 종식되고 봉건제의 붕괴되었다고 본다.

그 결과, 세 계급 (사제, 귀족, 평민) 간의 계급간의 동맹의 결과로서 삼원사회 탄생하고, 세 계급 간의 새로운 동맹으로서의 삼원사회 구조가 확립되었다.

삼원 사회의 의사 결정 구조

삼원 사회의 의사 결정 구조의 특징은, 각 신분 별 (인구 비율과 관계없이) 대략 1/3씩 권리를 가진다는 점이다.

이는 프랑스 혁명을 촉발한 프랑스 삼부회, 그리고 프랑스 혁명 과정에서의 계급간 권력 분점에 대한 논의 과정을 통해서 이해할 수 있다.

사제, 귀족 계급의 소유 집중

삼원사회 소유 구조의 핵심은, 극소수에 불과한 사제, 귀족 계급이 사적 소유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구조이고, 이 불공평한 소유 구조는 이후 근대 소유주의 사회로 전환되는 과정에서도 그대로 승계되어, 20세기 초까지 그 불평등 구조가 유지되었다는 점이다. (p106)

상대적으로 왕권이 빨리 확립된 프랑스, 영국에서는 인구 대비 사제 계급이 1% 내외, 귀족 계급 2% 내외 수준이었지만, 각 계급의 사적 소유 비율은 사제 계급 15% (십일조 효과를 포함하면 25% 수준), 귀족 계급 25~30%로서, 사적 소유의 40~45%를 인구 3%내외의 두 계급이 소유하는 극도의 불평등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에스파냐, 포르투칼, 폴란드 등에서는 귀족 계급의 인구비가 5~8%로 상대적으로 높았는데, 이 구조는 군주정 예산에 부담을 줌으로써 이들 나라에서 군주정의 근대화가 늦어지는 결과를 낳기도 하였다.

사제, 귀족 계급 인구 비율:

  • 프랑스: 사제 1.4%, 귀족 2.0% (1380) → 1.3%, 1.8% (1470) → 1.4%, 1.9% (1560) → 1.4%, 2.0% (1660) → 1.1%, 1.6% (1700) → 0.7%, 0.8% (1780) (도표)
  • 프랑스 인구: 1,100만 (1380) → 1,400만 (1470) → 1,700만 (1560) → 1,900만 (1660) → 2,200만 (1700) → 2,800만 (1780)
  • vs. 잉글랜드: 800만, 영국+아일랜드 1,300만, 미국 300만 (1780년)
    (프랑스 혁명 시기에도 프랑스 인구가 영국의 3배가 넘었고, 이를 통해 당시 유럽에서 프랑스가 차지한 비중을 짐작할 수 있음)

귀족 계급 인구 비율:

  • 프랑스: 2.0% (1660) → 0.8% (1780)
  • 영국: 1.3% (1690) → 1.1% (1800) → 0.2% (1880)
  • 스웨덴: 0.4% (1750) → 0.3% (1850)
  • 에스파냐 7.5% (1750), 포르투칼 6.4% (1800), 폴란드 6.0% (1750), 헝가리 7.5% (1790), 크로아티아 4.9% (1790)

사제, 귀족 계급의 소유 집중:

  • 사제 15%, 귀족 25~30% →합 40~45% (1780)
  • 사제 계급 토지 소유: 스페인 24% (1750–1760), 에티오피아 30% (1700)
  • 유럽 전체 교회의 사적 소유: 25~35%

프랑스 혁명 영향으로 소유 집중의 폐기

사제, 귀족 계급의 소유 집중 폐기가 처음 시도된 것이 프랑스 혁명이다.

프랑스 혁명 초기, 교회 자산 몰수와 십일조 폐지로 사제 계급의 사적 소유는 순식간에 폐기되었다.

  • 혁명 직후 토지 소유: 사제 20%, 귀족 22% (1788) → 사제 1%, 귀족 11% (1802년)

귀족의 사적 소유 비율도 혁명 직후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가 1830~1850년 왕정 복고 기간에 다시 이전의 70~80% 수준으로 회복되었고, 이후 19세기 후반 공화정이 자리를 잡으면서 점진적으로 축소되어 10% 수준이 되었다.

  • 파리 상위 0.1%의 자산 소유 변화: 50% (1780) → 25~30% (1800~1810. 프랑스 혁명 직후) → 40~45% (1830~1850. 왕정 복고) → 10% (1900~1910)

다른 지역의 ‘삼원사회’ 구조

다른 지역에서도, 사제 혹은 지식인 계급과 전사 계급으로 이루어진 소수 특권 계층에게 권력과 사적 소유를 집중되는 구조는 원칙적으로는 같은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중국:

  • 대체로, 관리 + 전사계급 간의 권력 분점 구조
  • 지식인 계급: 성인 남성의 4% 고전 교육 받고, 0.3~0.5% 과거시험 합격 (19세기)
  • 이 중 일부 관리 등용: 19세기 4만명 (인구 4억 대비 0.01%). 7세기~20세기까지 대략 0.01~0.02% 수준 유지
  • 전사계급: 인구의 1~5% 수준 유지. 예: 청나라 ‘팔기군’ 500만명 (1720년. 당시 인구 1.3억 대비 4%). 관직의 약 절반 팔기군 계급에게 배정

인도:

  • 카스트 제도: 브라만 (사제, 학자, 지식인), 크샤트리아 (전사 계급), 바이샤 (농부.수공업자.상인), 수드라 (노동자 계급)
  • 인구 비중 (1881년. 총 인구 2.5억 대비. 이 중 힌두 인구는 1.9억): 브라만 5.1%, 크샤트리아 2.9%, 바이샤 1.8% (p389)
  • 전통적으로 카스트 계급 간의 이동이 어느 정도 유연한 편이었으나, 영국 식민 체계에서 고정시켜 버림

일본:

  • 도쿠가와 시대: 전사계급 인구 5~6%. 신도.승려 1~1.5%

사족: 십일조의 의미

프랑스 앙시앙레짐 하에서 교회 십일조는 땅과 가축으로부터 거두는 수확에 부과하는 조세였다. 경작지와 지역 풍습에 따라 가변적인 세율은 일반적으로 수확량 가치의 8~10% 사이였는데 대체로 현물로 납부되었다.

십일조는 모든 토지에 부과되었고, 귀족은 면제받았던 왕실 세금과는 반대로 원칙적으로 귀족의 토지도 포함된다.

십일조로 거둔 수입은 소교구와 주교구와 수도원 사이의 복잡 한 분배 규칙에 입각하여 바로 교회조직으로 들어갔다. 이것이 교회 재산의 소득 과 더불어, 교회 제도에서 사제들에게 보수를 주고 사제들이 활동하는 데 필요한 재원을 마련해주는 주요 자원이었다.

십일조의 기원은 아주 오래된 것으로, 신자들이 중세 초기부터 교회에 자발적으로 납부하던 것이 점차 대체되어, 8세기 경 십일조에 법적 강제력을 부여하여 의무 납부로 전환했다. 모든 후속 왕조가 이를 지지함으로써 교회와 왕실의 연합, 사제와 귀족 계급의 불멸의 동맹이 체결된다.

바로 이 정치적 조세 재정 제도가, 사실상 교회를 준국가로 변형시켰다. (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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