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과 이데올로기’ — 식민지 체제, 노예제 사회의 불평등 구조와 그 해체 과정: 영국, 프랑스, 아이티, 미국의 예

허진호 (Jin Ho Hur)
9 min readMay 18, 2021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며 처음 알게 되어 가장 충격적이었던 내용이 바로 노예제 해체 과정 및 식민지 체제의 economics였다.

두 가지 주제에 대하여, 이제까지 국가.민족 간의 분쟁, 국가간 역학 관계로만 보았던 이 주제를 경제적 측면에서 보면서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이 주제를 이해하게 되었다. 결국 식민제도, 노예제뿐 아니라 기축 통화, 20세기의 석유 패권 등 모든 국제 정치 역학의 기저에는 모두 경제적 역학 관계가 모든 것을 지배해 왔다는, 어쩌면 당연한 사실을 뒤늦게 깨닳은 것이다.

“It’s economy, stupid!” 표현을 다시 되새기며 (정확히 이런 의미로 쓴 표현은 아니지만), 아주 간단히 요약해 보자면:

  • 식민지 체제는, 영국, 프랑스 등 대표적 제국주의 국가 경제에 지대한 기여를 하였다. 식민지 해외 자산에 의한 민간 부문 이익이 GDP의 5% (프랑스)에서 8% (영국) 수준에 이를 정도. (현재의 대한민국에 대입해 보면 연간 80조~130조 규모의 추가 경제적 이득을 의미한다)
  • 식민지 해외 자산 규모는 1914년 GDP 대비 비율 기준 영국 191%, 프랑스 125%, 독일 42% 수준으로, 영국, 프랑스 민간 보유 전체 자산의 20~25% 수준에 이른다. 이 것이 어느 정도 규모인지 이해하기 위하여, 현재 해외 자산 보유 비율이 극도로 높다고 하는 세 나라와 비교해 보면, 2018년 기준 GDP 대비 비율이 일본 80%, 독일 58%, 중국 20% 수준이다. 식민지 시기 영국, 프랑스의 식민지 해외 자산 비중이 얼마나 높은 수치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 재미있는 것은, 식민지 지배 관련 공공 부문 식민지 예산은 1850년~1960년 사이 대체로 세입.세출 균형을 이루었다는 점이다. 즉, 현지 식민 정부의 세입은 거의 현지 비용으로 충당되고, 본국으로의 송금도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이 현지 조세 세입 수준 역시, GDP 대비 북아메리카 10%, 인도차이나 12% 수준으로 프랑스 본토의 16% 수준 대비 크게 많이 징수한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세출의 대부분이 영국, 프랑스에서부터 식민지에 정착한 유럽계 인구에게 지출되었다는 점에서 다소 수탈적이기는 하다. 식민지 정착한 유럽계 인구 비율은 대개 1%를 밑돌았지만 (모로코 4%, 튀니지 8%, 알제리 10%가 예외), 예산 지출의 70~80%가 이 유럽계 인구를 위하여 지출되었다.
  • 1500년 경부터 시작한 식민지 개척은 현지의 노예 및 대서양 노예 무역을 통하여 유럽의 이익에 봉사하는 노예제를 정착시켰다. 이는 현지 인구 중 노예 비중이 앤티리스 제도 80%, 생도맹그(아이티) 90%에 이를 정도의 왜곡된 식민지 노예제를 만들었다.
  • 영국, 프랑스는 노예 폐지 과정에서 노예 소유자에게 노예의 시장 가격에 해당하는 금액을 정부에서 지불하였다. 그 금액이 당시 GDP의 5% 수준으로, 이 금액은 전부 국채로 발행되어 결국 장기간에 걸쳐 모든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되었다. (현재 우리나라에 대입해 보면 약 80조 규모의 국채를 발행해서 이를 전 국민의 세금으로 갚았다는 의미이다)
  • 더 극악한 경우는 생도맹그 (현재의 아이티) 경우. 생도맹그는 프랑스 식민지로서 당시 총 인구의 90%가 프랑스 소유 노예. 1791년 생도맹그의 노예 반란을 계기로 1794년 프랑스 식민지 전체에 대한 노예 해방령이 내려지고, 1804년 독립하여 ‘아이티’로 개명한다. 1825년 프랑스는 아이티를 침공하고, 철수 조건으로 1.5억 금본위프랑을 받기로 하고 군대 철수. 이 금액은 1825년 프랑스 GDP의 2%, 아이티 GDP의 300%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2018년 기준 400억 유로 규모), 아이티는 이 금액을 프랑스 민간 은행에서 대출받아 프랑스에 납부하였고, 이후 1849~1915년까지 매년 GDP의 5%에 상당하는 금액을 갚아 나가서 결국 1950년에야 다 상환하였다.
  • 미국은 (다들 잘 알고 있듯이) 1861~1865년 남북전쟁 이후 노예제가 폐지되었다. 1860년 당시 미국 남부 소유 노예의 시장 가격은 미국 전체 GDP의 100% 수준. 남북전쟁 전비 충당을 위하여 당시 GDP 30% 수준의 국채를 발행하였던 미국 정부는, 비용을 지불하면서 노예 해방을 할 방법이 없다고 판단하여 노예 소유에 대한 배상 없이 노예 해방을 진행하였다.

이와 관련된 데이터들 중심으로 실제 일어난 일들을 정리해 보면:

노예제 사회: 극단적 불평등

노예제의 역사적 기원

  • 기원전 2000년~1000년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노예제 시작 (예: BC 1750년 함무라비 법전에 노예 소유자의 권리 명시)
  • 아테네, 로마, 18–19세기 미국 남부, 앤틸리스 제도에서 노예 비율 총인구의 30~50% (예: 1세기 로마 노예 100만, 자유민 100만. 기원전 5세기 아테네: 노예 15~20만. 자유민 20만)
  • 아프리카 노예 무역: 1500~1900년 아프리카 노예 무역 총 2,000만명. 이 중 2/3 대서양 무역으로 아메리카, 앤틸리스제도. 1/3은 사하라 횡단 무역으로 홍해, 인도양

영국: 노예제 폐지와 배상 과정 (1833~1843년)

  • 1815년 영국령 기아나 반란, 1802년 과들루프섬 반란, 1831년 자메이카 노예 반란으로, 1832~1833년 영국내 노예제 폐지 논쟁
  • 1833년 노예 폐지 입법화하고, 1833~1843년 기간 중 노예 소유자에 대한 전면 배상 허용
  • 수치: 노예 소유자 4,000명, 노예 80만 (영국 인구 2,400만명의 3%). 배상액 2,000만 파운드 (당시 영국 국민소득 5% 수준). 이 금액 전체를 영국 국채로 조달하여 배상하고, 이후 100여년에 걸쳐 (세수로 마련된) 국가 예산으로 상환
  • 노예 시장 가격: 자유 노동력 10~12년치 임금 수준 (현재 기준 약 30~35만 유로)

영국 국채 상환 과정:

  • 1815년 영국 국채 규모 국민소득의 200% 수준
  • 이후 100년동안 세수의 거의 1/3을 국채 상환에 사용하여, 그 결과 1850년 국민소득의 150% 수준, 1914년 70% 수준으로 감소. 이후 1,2차 대전을 거치면서 나머지 전액 상환
  • 1,2차대전 이후 , 인플레이션으로 국채 대부분을 해결한 프랑스, 독일 등 다른 나라의 경우와 비교해서, 아주 예외적인 케이스
  • 국채 상환을 위한 예산 흑자 규모가, 1815~1914년 국민소득의 2~3% 규모로, 당시 총 세수가 국민소득 10% 이내. 교육 지출 국민소득 1% 이하인 점과 비교하면 얼마나 큰 비중이 국채 상환에 지출되었는지 비교 가능

프랑스: 2차에 걸친 노예제 폐지 (1794~1848년)

  • 1791년 생도맹그(아이티) 노예 반란 으로, 1794년 국민공회에서 노예 1차 폐지 결정
  • 1802년 나폴레옹의 노예제 복원이후, 1848년 제2공화국에서 2차 폐지
  • 1780~1790년: 프랑스 소유 노예 70만 (앤틸리스 제도 60만, 인도양 프랑스 플랜테이션 10만) (프랑스 본토 인구 2,800만의 3%)
  • 노예 배상 방안 (토크빌 방안 1843년): 배상액 절반은 국채, 나머지 절반은 노예들이 지급 (10년간 국가에 낮은 노임으로 고용)하는 방식

생도맹그(아이티): 노예 해방이 국채가 된 예

  • 배경: 1626년 프랑스 식민지화. 1780년경 노예 45만명 (총 인구의 90%). 1791년 노예 반란 시작으로, 1793년 생도맹그 노예해방령. 1794년 프랑스 식민지 전체로 노예 해방령 확대. 1804년 생도맹그 독립하여 ‘아이티’로 개명
  • 노예 총인구 대비 비율 (1780~1830년): 자메이카 84%, 바베이도스 80%, 마르티니크 85%, 과들루프 86% (vs. 미국, 브라질 35~50%)
  • 1825년 샤를10세의 아이티 침공. 아이티 정부가 프랑스에 1.5억 금본위프랑 갚겠다는 조건으로, 아이티 독립 인정과 프랑스 군대 철수. 이 금액은, 당시 프랑스 국민소득 2% (2018년 기준 400억 유로)이며, 1825년 아이티 국민소득 300% 해당
  • 아이티는 5년 이내 프랑스 민간은행에게 연리 5% 융자 받아서 전액 납부. (채무이자로만 아이티 국내 생산의 15% 상당). 이후 1849~1915년까지 매년 GDP 5% 상당 금액을 상환하여 1950년 전액 상환 완료

미국: 전쟁을 통한 노예제 폐지 (1861~1865년)

  • 미국 남부 인구: 1800년 인구 260만 중 흑인 90만 (34%)에서, (남북전쟁 직전) 1860년 인구 1,200만 중 흑인 400만 (33%)
  • 미국 노예제 폐지의 경제학을 살펴 보면:
  • 노예 시장가치는 1860년 기준 미국 전체 GDP 100% 수준으로, 남북전쟁 후 미국 정부는 남북전쟁 전비로 인한 국채가 23억달러 (1865년. 당시 GDP 30% 수준)으로, 노예 해방 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판단하였음
  • 당시, 노예 해방 비용 검토의 일환으로, 1810~1820년 제퍼슨 & 매디슨 검토하였을때, 전체 비용을 당시 국민소득 100% 수준으로 추정하고, 서부 영토 1/3~1/2 매각 대금으로 충당 가능하다고 추정기도 하였다.
  • 그러나, 결국 남북간의 정치적 고려, 경제적 고려를 통해, 결국 노예 소유에 대한 배상 없이 노예가 해방되었다

식민사회: 다양성과 지배

유럽 식민화 시기

1차시기

  • 1500년 경 시작 → 1800~1850년 대서양 노예무역 & 노예제 종식으로 끝남
  • 군사적이고 수탈적. 노예제 중심 (앤틸리스제도 80%, 생도맹그 90%)
  • 프랑스령.영국령 앤틸러스 제도 — 인도양.브라질.북아메리카 삼각무역과 노예제 사회 발전. 에스파냐 중남미 정복

2차 시기

  • 1800~1850년 시작 → 1900~1940년 전성기 → 1960년대 독립 물결로 완료
  • 직접 지배, 노예제가 아닌, 정교한 정치.행정.치안 기구 + 민간 기업을 통한 간접 수탈 중심
  • 예: 인도 주재 영국인 20만명 (군인 10만 포함) 인도 인구 0.1% 이하 드

식민지 관련 금융 자산

  • 유럽 각국의 식민지 해외자산 규모, 1914년 기준 GDP 대비 프랑스125%, 영국 191%, 독인 42% 수준
  • 현재 해외 자산 비율이 아주 높은 국가와 비교해 보면 얼마나 높은 수준인지 이해할 수 있다. 2018년 기준 일본 80%, 독일 58%, 중국 20%
  • 프랑스, 영국의 해외 자산이 민간 보유 자산 전체의 20~25% 규모 (1914년)
  • 해외 자산에 의한 수익 (GDP 대비): 프랑스 5%, 영국 8%

식민예산 구조

프랑스의 예:

  • 1850~1960년 사이 식민예산은 자족적이어야 한다는 원칙으로 대체로 세 입.세출 균형
  • 과세 기준: 소비세, 간접세, ‘인두세’ 중심의 역진세로, 식민지 조세 수탈 수준은 GDP 대비 북아프리카 10%, 인도차이나 12% 이상으로, 프랑스 본토 16% 수준과 비슷
  • 과세 지출: 식민 정착민 중심 지출. 예: 모로코 초등학교 예산 비중은, 유럽계 인구가 4% 대비 지출 비중 79%
  • 본국의 식민지 관련 지출 예산 : GDP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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