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과 이데올로기’ — 공산주의와 포스트 공산주의: 소련, 중국의 예

허진호 (Jin Ho Hur)
10 min readMay 21, 2021

공산주의 체제는 소유주의 이데올로기에 가장 직접적 정면 도전을 하였던, 20세기 가장 대규모의 사회 실험이었다. 그 점에서, 공산주의 체제 실험은 소유 불평등을 다루는 이 책에서 어쩌면 가장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주제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는 소련, 중국, 동유럽의 서로 다른 궤적을 다루는데, 가장 놀라웠던 점은 포스트 공산주의 체제는 소련, 중국, 동유럽 모두 공통적으로 미국, 유럽의 자본주의 체제보다 훨씬 더 악화된 소득, 소유 불평등 구조를 만들어 냈다는 점이다.

그 중에서, 소련/러시아, 중국의 각각 다른 과정을 요약해 본다.

배경

  • 공산주의는 20세기 초에 소유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가장 급진적인 도전이었다. 공산주의는 사실상 소유주의 이데올로기를 가장 정면으로 반대하는 이데올로기다.
  • 소유주의는 사적소유에 대한 절대적 보호가 경제적 번영과 사회적 조화에 가장 중요한 핵심요소라고 단언하는 데 비해, 소비에트 공산주의는 사적소유 전면 폐지와 완전한 국유화로 대체하고자 한다.
  • 그러나, 사적소유 이데 올로기에 대한 공산주의의 도전은 역설적으로 (공산주의 몰락 이후 포스트 공산주의 체제에서) 사적소유 이데올로기가 다른 어느 지역보다 더 강하되는 결과를 낳았다.
  • 소련 공산주의 실험 (1917~1991년)의 극적인 실패는 1990년 이후 사적소유를 다시 신성화하는 흐름에 가장 크게 기여하였다. 러시아는 특히 이러한 변화를 대표하는 상징이 되었다. 오랫동안 사적소유 철폐의 나라였던 러시아는, 공산주의 몰락 이후 해외 조세피난처에 숨겨둔 부, 새로운 과두지배자들(올리가르히)로의 부의 집중 측면에서 세계적 선두에 서게 된다.
  • 더 일반적으로는, 러시아, 중국, 동유럽 모두 포스트 공산주의는 21세기 초 하이퍼자본주의와 비슷하거나 더 심하게 소유의 불공평 수준이 악화되었다.

소련

소비에트 체제의 문제점

  • (여기에서 공산주의 체제, 소비에트 체제의 수많은 모순을 모두 분석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고, 여러 모순 중 상징적인 것 한 가지만 짚어 본다)
  • 레닌은, 1924년 사망하기 직전까지 규제된 시장과 사적소유 형태에 의거하는 신경제정책에 우호적이었다.
  • 스탈린은, 레닌 사후 1928년부터 레닌의 신경제정책을 중단하고 모든 생산과 소유의 전면적 국유화, 농업집산화를 시작한다
  • 이 체제 부조리의 대표적인 것의 하나는, 소비에트 경제와 도시 기능에 필수 불가결한 독립 영세노동자를 모조리 범죄자 취급하여 (기존 차르 체제에서의 전사, 사제계급 뿐 아니라) “민간 상업, 중개업으로 소득을 얻는 모든 이들과 이윤을 목적으로 임금노동자를 고용한 이들” 모두 시민권을 박탈하고 투옥하였다.
  • 그 결과, 1928~1929년 도시 인구의 약 7%, 농촌 인구의 4%가 소위 ‘리첸지야’ 명단에 포함되었다. 스탈린이 사망한 1953년 기준 성인인구 5% 이상이 감옥에 있었고, 그 중 절반 이상은 이러한 영세 자영업자와 좀도둑 들이었다. (이 규모를 이해하기 위하여 미국과 비교하면, ‘18년 기준 수감자는 미국 성인인구의 1%. 흑인 성인남성의 5% 수준이다.)
  • 이러한 근본적인 부조리들로 인하여, 1950년까지 (서유럽 대비 급 성장한 러시아 국민소득은), 이후 1990년까지 서유럽 60% 수준에서 정체된다. (도표 12.3) 이 기간 러시아 교육 수준 급속히 상승한 점을 감안하면 이는 뜻밖의 결과다
도표 12.3 러시아-유럽 생활수준 격차: 1870~2015년

그럼에도, 소비에트체제가 어떻게 그리 오래 생존할 수 있었는지?

  • 뿌리 깊이 불평등한 차르체제 하에서, 러시아는 경제.사회.보건.교육 등 모든 면에서 아주 취약하였다.
  • 예를 들면, 차르 체제는 (1917년 혁명의 불과 몇 십년 전) 1861년 러시아 인구의 40%를 점하고 있는 농노제를 폐지했다. 차르 권력은 농노에서 해방된 이들에게 과거 소유자들에게 1910년까지 채무를 상환하도록 하였다. 이는 1833년 영국, 1848년 프랑스 노예제 폐지 당시 제도화된 노예소유자에 대한 금전적 배상과 매우 유사 했다.
  • 이러한 차르 체제와 비교해서 소비에트 체제는 상대적으로 훨씬 더 평등주의적이고 근대화를 지향하는 체제로 인식되었다.
  • 1920~1950년 기간시설, 운송수단, 교육·학문·보건 투자 분야에 집중된 공공 투자를 통해 근본적 근대화가 가능해졌고, 1950년대까지 서유럽 대비 생활조건, 소득이 상대적으로 개선되었다.
  • 그 결과, 소비에트 체제 하에서 명목상 소득 불평등은 많이 개선되었다. 소비에트 체제동안 소득 상위 십분위 비중이 총소득의 약 25%으로 (유럽, 미국 대비)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이며, 특히 차르 체제에서의 45~50% 수준보다는 훨씬 개선되었다.
도표 12.1 러시아 소득 불평등: 상위 10% 비중 1900~2015년

포스트 공산주의 러시아: 과두지배적이고 약탈정치적인 변동

포스트 공산주의 러시아에서 대규모 공공자산 약탈과 과두지배 등장

  • 1990~1991년 소련 해체, 생산 기관의 해체로 1992~1995년 생활수준이 하락하였다가, 1990년대 후반부터 다시 상승하여 2010년대 초 이후 PPP 기준 서유럽 약 70% 수준이 된다(도표 12.3 참조)
  • 이 기간 기존 모두 국유화 상태 자산의 재 분배 과정은, 포스트 공산주의 정권의 무능과 함께, 기회를 포착한 기회주의자들이 정보, 권력의 독점을 통하여 기존 국유 자산을 거의 무상으로 탈취함으로써 ‘올리가르히’가 등장하게 된다.
  • 러시아는 1991~1995년 시행된 ‘바우처제도’를 통해 공공자산 대부분을 사유화하려는 ‘충격요법을 택했다. 원칙적으로는 러시아의 누구나 자신이 선택한 기업의 주주가 될 수 있는 ‘민영화 바우처’를 보유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하이퍼인플레이션 상황에 서(1992년 물가상승률 2,500%) 다수의 임금과 연금의 실질 가치가 거의 소멸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민영화 바우처’를 포함한 소지품을 팔아야 했다. 반면 러시아 정부는 주식을 대량 매수하려는 핵심 주주에게 유리한 조건을 제공하여, 대다수 러시아 기업 (에너지 부문 포함)이 수 년만에 소수의 주주 집단에게 넘어갔다. 이 주주 집단은 수많은 러시아인의 ‘민영 바우처’를 흡수하고 단기간에 새로운 ‘과두 지배자’가 되었다.
  • 이 과정에서, 제도적 모순도 불평등 악화에 기여를 한다. (1) 포스트공산주의 러시아에는 상속세가 전혀 없고, 따라서 상속 관련 공식 통계도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2) 소득세는 완전히 비례적이어서 세율은 2001년 이후 소득이 1,000루블이든 1,000억 루블이든 13%일뿐이다. 그 어떤 나라도 누진세 이념 자체를 이토록 심하게 파괴한 적은 없었다.
  • 심지어, 미국에서 레이건 정부와 트럼프 정부가 경제활동과 기업가정신을 고무할 것이라는 명분으로, 법인세, 소득세율 인하를 하였지만 누진세 원칙 자체를 폐지하지는 않았다. 상위 소득세율은, (13%가 아니라) 기존 최대 70~80% 수준에서 30~35% 수준으로 낮췄다.

포스트공산주의 러시아의 소득 불평등 상승 속도

  • 1990년에서 2000년 사이 러시아는 소유 불평등을 역사 상 가장 낮은 수준에서 가장 높은 수준으로 악화되었다.
  • 소득 상위 십분위 몫: 1990년에 25% 이하에서, 2000년 45~50%로 악화 (도표 12.1)
  • 소득 상위 백분위 몫: 1990년 5% → 2000년 약 25%. 이는 미국보다도 현저히 높은 수준 (도표 12.2)
도표 12.1 러시아 소득 불평등: 상위 10% 비중 1900~2015년
도표 12.2 러시아 소득 불평등: 상위 1% 비중 1900~2015년

러시아 자본 유출 현황

  • 1993~2018년 기간 러시아는 막대한 무역흑자 (25년 동안 연평균 GDP 10% 수준. 누적 GDP 250% 수준) 기록. 특히, 1990 년대 초부터 특히 가스와 석유 수출로 인한 무역 흑자가 컸다.
  • 원칙적으로 러시아는 대략 그 (GDP 250%) 수준의 막대한 외환보유고를 축적했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러시아 공식 외환보유고는 2018년 국내총생산의 30% 이하 수준으로, 이는 최소한 GDP 200% 규모가 해외 유출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규모는 러시아 가구들이 보유한 합법적 금융자산 전체의 액수와 거의 같다.
  • (비슷하게 석유 수출로 부를 축적한 경우와 비교하면) 노르웨이는 2010년대 중반부터 국내총생산 250%가 넘는 자산을 국부펀드에 보유하고 있다.
  • 참고: 조세피난처 보유 금융 자산 규모: 세계 금융자산 전체의 거의 10% 수준 (2010년대 초)

중국: 권위주의적 혼합 경제

  • 중국은, 소련의 실패와 마오주의 시대(1949~1976년) 오류를 거울삼아 1978년부터 전대미문의 정치경제체제 형태를 실험한다. (1) 중국공산당의 지도적 역할 유지하고 나아가 더 강화한다 (2) (‘개혁과 개방’ 구호하에) 공적소유와 사적소유 사이의 지속적인 균형에 바탕을 둔 전대미문의 혼합경제 발전을 추구
  • 그 과정을 설명하는 데이터:
  • 국민자본 대비 공적자본 규모는 1978년 국민자본의 70% 수준에서 1980~2000년 초 기간동안 큰 폭으로 감소하여, 2000년대 중반부터 30% 선에서 안정화되었다. 공적소유와 사적소유 의 균형은 이 시점 이후 변동이 없었고, 이는 중국에서 소유의 점진적 사유화과정이 2005~2006년 이후 중단되었다는 의미
  • 중국 사적소유 (자산 규모)는 전체 자산규모의 거의 70%로서 중국은 더 이상 공산 주의가 아니며, 공적소유는 항상 30% 상회하는 수준으로서 완전한 자본 주의도 아닌, ‘공정소유와 사적소유 사이의 균형에 바탕을 둔 혼합 경제’라는 의미이다.

중국 공적자본 부문의 소유 현황

  • 주택용 부동산: 5% 이하 보유 (2010년대 말)
  • 기업 총자본 약 55~60% 보유 (2010년대 말. 2005~2006년 이후 유지)
  • 비교하자면, 자본주의 국가에서 공적 소유의 비율은 1950~1980년 기간 중 대체로 20~30% 수준을 유지하였으며 (1970년대 말 독일, 영국 약 25~30%, 프랑스, 미국, 일본 15~20%),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도표 12.6)
  • 이를 보면, 미국, 유럽은 오래 전부터 더 이상 혼합경제가 아니었다. 공적자산 (수도, 전기, 가스, 정보통신망 같은 공익산업) 사유 화, 그외 공공 부문들(교육, 보건)에 대한 제한된 투자, 국채의 지속적 증가를 감안하면, 모든 자본주의 강대국에서 국민자본 대비 공적자본 비율은 거의 전무 (5% 이하)하며, 심지어 미국과 영국에서는 마이너스 수준이다.
도표 12.6: 주요 국가 전체 자본에서 공적자본 비율: 1978~2018년

중국 불평등 문제: 1978년 이후 소득 분배 변화 과정

  • 중국의 소득 불평등은, 개혁 초기부터 급증하여 왔으며, 2000년대 중반 이후 안정화
  • 1980년대 초, 중국은 세 대륙에서 가장 평등한 국가였으나, 1990년대 중반부터 소득 불평등 수준이 유럽보다 나빠져서, 현재 소득 불평등 수준은 거의 미국에 가깝고, 유럽에 비해서는 훨씬 더 불평등하다. (도표 12.8)
  • 소득 불평등은, 1980년대 가장 평등 한 유럽 나라 수준에서, 2010년대 미국에 더 가깝고,
  • 자산 집중 불평등은, 상위 십분위 자산 규모가 1990년대 초 40~50%로 스웨덴과 유럽보다 낮은 수준에서, 2010년 70%로 미국에 가까우며 러시아보다 못하지 않은 수준으로 악화되었다.
  • (가장 중요한 요인은 아니지만) 중국은 상속세가 아예 존재하지 않고, 심지어 홍콩도 1997년 중국에 반환된 이후 2005년 상속세 폐지될 정도였다.
도표 12.8: 중국 유럽 미국의 불평등: 상위 10% 하위 50% 비중: 1980~20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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